ㅁ. 꺙, 2008과 1/2년인 건가효


1월
2월
3월

그리고 4월과 5월


거처를 두 번이나 옮겼고
서울은 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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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4 13:02 2008/05/2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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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잡설

2008년 2월 13일 수요일

아, 피곤하다. 학원 다니기 시작한지 고작 삼 일만에 파절임이 돼서 방에 들어왔다. 겨우 삼 일째. 너무한 것 아닌가. 학원 다닌다고 민법 공부를 미친 듯이 병행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골골골. 토요일까지 수업들었던 지영이가 힘들었을 법도 하지. 힘들어서 실강은 못 듣겠다던 네용이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해버렸으. 그래봤자 8명 수업 듣는 거에 비하면 줄 서서 기다려 300명 수업 같이 듣는다고 생각하면 완전 쥐쥐. 점심을 제대로 먹으면 수업 중에 배가 많이 고프니 밥이나 잘 챙겨먹어야겠다.

왔다갔다 하면서 버리는 두 시간 동안엔 뭘 할까나. 콩나물 시루 같은 2호선에 민법 공부까지 하라면 대전으로 확 내려가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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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쓴다고 특허 검색 시스템 찌질댈 때였던가, 네이버 지식인엔 “저 발명했어요. 특허내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류의 글을 봤었다. 당시엔 특허출원에 관해 아는 게 없었으니 나도 답변을 읽어보았는데. 이건 뭐 이래이래 복잡해? 특허 받고 싶으면 특허청에 신청하면 되는 건 알겠다만, 뭔가 복잡한 절차가 주루룩 달려있었다. 불친절하기도 하지. 뭐 특허청 홈페이지 정도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기본정보를 무턱대고 지식인에 물어보는 사람들에겐 그 정도 답이 딱이긴 하지만.
여하튼, 공부하고 나서 봐도 특허 출원이라는 게 꽤나 그 서류요건이나 기재방식 등 그 형식 자체가 까다로운 편이다. 물론 그 까다로운 정도가 외계어로 진행되는 것도 아닌 이상, 본인이 스스로 특허를 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정도이긴 하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특허법을 공부하고 있자니 경험삼아 혹은 특허 수수료가 아깝다고 혼자 특허 낸다는 게, 생활의 발견 정도의 소소한 발명이 아닌 이상 꽤나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변리사가 돈 좀 벌겠다는 어디 범인들이 스스로 특허를! 버럭! 이라는 얄팍한 논지는 물론 아니고, 특허라는 것 자체가 무체물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형태 없는 아이디어이다 보니 전공 지식 200% 활용해서 글이랑 도면으를 아무리 잘 채운다고 해도, 명세서에 구멍이 송송 뚫리게  되는 것이다. 원뿔이라는 형태를 보호하고자 하면 서면 상에 밑에서 본 원형, 위에서 본 원형, 옆에서 본 삼각형 등 다양한 각도의 서술이 필요하게 되는 것과 같다랄까나(원뿔로 설명하니까 정반합이 생각나는군). 결국 특허란게 독점적 배타권을 가지고 권리 행사 한번 해보겠다는 건데, 이런 문장은 없었잖아 하면서 얄밉게 특허 활용하고 돈 안 내고, 특허낸 의미가 순식간에 반감되버리는거지. 그래서 제대로 보호받고 싶은 발명은 특허법률사무소를 거쳐 실무자들의 노하우를 살려야 그나마 여러 가지로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벌써 가제가 게 편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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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상록이한테 기술고시 붙어도 특허청에서 와우하며 결국 대전에서 사는 거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를 한 적 있었다. 그 땐 기모임 중 맥주 한잔에 곁들여진 농담 정도였는데, 허허. 이젠 정말로 동기 중 누군가 기시 붙어 특허청에 근무할 수도 있겠고, 나 역시 특허 관련 바닥에서 일 할 수도 있겠고. 그저 신기하고 재밌을 따름이다.

그런데 처음에 언급한 저 농담이 이제와서 보니 상당부분 틀렸던 거 아닌가. 우선 ‘특허청에 근무할테니 결국 대전에서 사는’ 이라는 부분. 특허청이 대전에 내려온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렇다면 특허청 심사관들 대부분은 주소지는 대전일까? 노노. 일주일에 한번쯤 KTX로 출근, 평소엔 재택근무를 하시는 서울씨티즌들이 대부분이시다. 재택근무에 관한 근거는 특허법률 조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충청도에 행정수도가 내려온다? 켘. 대부분의 사무관들은 서울에서 재택근무를 할 것이라는 걸 특허청이 자알 보여주고 있다는 것.

'튻허청에서 와우하며' 라는 표현도 썩 정확하지 않은 언급이었다. 사실 변시 준비하기 전 특허청은 딱 저 농담대로 권력에 큰 욕심 없는(혹은 재경부, 건교부, 산자부 등에 자리잡지 못한)  행시 합격자들이 대전 내려와 유유자적하게 근무하는 이미지였다랄까? 그나마 야심있는 경우라면 특허청에서 적당히 10년 채운 짬밥으로 변리사 자리 꿰차고 나와 일명 ‘특허청 출신 변리사’로 돈을 긁어모으는 코스 정도? 무려 그렇게 만만히 봤던 특허청인데 막상 그 바닥 한번 들어가볼려고 진입장벽 박박 기어오르고 있는 입장이 되고 보니, 특허청 어르신들 프라이드가 그렇게 높으시다는 새로운 인식. 몰랐지, 예전엔. 특허청이 정부지원 하나 없이 그렇게 돈이 많은 알짜배기 기관인지.

여튼 오늘 주제는 자신감이나 자존심이나(영어로는 프라이드, 끄응) 암만 높드래도 행정처리의 허술함에 있어서 우리 특허청이 어딜 빠져나가겠소로이까 이다. 심하게 1등하기 좋아해서 빡시게 실적관리 들어가는 우리나라 행정은, 곧 삐까뻔적하게 보이기 위한 실적만 있고 내실은 부실하다는 특징을 가지기 마련이다. (살아있는 예제로는 우리 2MB 대통령 당선인이 있겠다.)
특허청의 경우, 멀게는 맨 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세계 2번째로 구축한 특허출원 전자 시스템과, 가까이는 최종적으로 특허 받는데 필요한 기간이 9.8개월로 세계최단이라는 혁혁한 성과 정도가 있겠다. 그러나 1년에 수십만 건의 국내 특허출원 건들을 9.8개월 내에 다 소화하려면, 특허청 심사관들이 하루 10건 이상의 특허를 처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허허. 아무리 내 전공이라도 하루 10개의 관련 논문을 완벽히 소화하기도 힘든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도 특허처리 10개를 하루 내 다 보고 이해하기 버거울 것 같은데, 여기서 질문. 튻허청 심사관들의 평균 퇴근 시간은? 두둥, 우리의 특허청 심사관들은 눈 아프다고 오후 4시면 컴퓨터를 꺼 버리신다.
심사관 분들의 안구 건강을 위해, ‘선행기술조사’를 명목으로 특허심사 중인 내용을 외부에 유출시킬 수 있다는 특허법률 조문이 유유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 특별한 특허와 관련된 건만 ‘선행기술조사’를 위해 정보원으로 보내져야 할 텐데(발명의 비밀유지 사항과도 관련있다). 신속한 행정처리를 위해 대부분의 특허 건은 무조건 정보원으로 보내지고, 더불어 참고만 해야할 정보원의 의견은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다. 덕분에 국내 특허출원 중 BM만 제외하고(30%정도) 70%가 특허로 인정되고 있다. 이는 외국에 비해 높은 수치.

손쉽게 특허를 받고 싶은 비결이 알고 싶다? 그럼 당신이 특허를 받고 싶은 핵심 아이디어에 부가적인 것까지 붙이고 또 붙여서 25장의 복잡한 듯한 명세서를 만들면 OK. 100 중에 99는 특허 인정 도장이 쾅쾅 찍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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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1,2법칙관 관련된 영구기관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녀석. 오늘 영구기관에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었다. 특허법을 공부하기 시작하고서야 특허법원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특허법원의 시작이 영구기관이었다는 나름 뒷이야기라면 뒷이야기. 크크.

특허법에서 자연법에 위반하는, 가령 영구기관 같은 것은 그 정의규정에 의해 발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근데 열역학이라는 게 공부하면 할수록 어려운 녀석인지라, 복잡한 기계에서는 계산 실수 한 번 삐긋만으로도 열효율이 70%가 나와버릴 수 있고, 이런 실수는 열역학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들조차도 범하곤 하는 빈번한 경우라고 한다. 그래서 무려 몇 년 전, 한 화학자가 영구기관을 가지고 특허출원을 했고 위에 말한 이유로 그 특허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 사건의 발단. 출원자는 특허 1심, 특허 2심(당시엔 특허청 내에 관련 부서가 있었다) 결국 대법원까지 불복재판신청에서 기각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이에 광분한 출원자는 1심과 2심을 사시를 가진 법원에서 받지 못했다며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위헌 재판을 걸었고 결국 위헌 결정이 났다는 것. 결국 이 위헌사건 때문에 개헌과 함께 대대적인 개혁이 있었고, 이에 특허법원이 생김과 함께 행정법원도 따라 생겼다는 것이 사건의 결말이 되겠다. 아아. 어찌나 흥미롭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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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 철학이다. 굉장히 이념적이고 추상적이야. 암. 그렇고 말고.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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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08:44 2008/02/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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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길고 긴 일기

2월 12일 2008년 화요일

국고 부족 초유의 IMF 사태 땐 금모으기 성금이 온 나라를 발캌 뒤집었었다.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때는(음모론이 흉흉하지만) 태안군민들을 위한 자원봉사 및 성금 모금에 다시 한 번 발캌. 그리고 이번엔 불타버린 숭례문을 위해 대통령이 국민성금을 ‘모으자’ 라더라. 이 나라는 참 애국자(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애국자들의 마음을 단합시킬 줄 아는 명박 같은 지휘자도 빈번하고. 쫌 독특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돈을 ‘걷겠다’라고 발벗고 나서는 이명박의 몰염치함과 그 정도의 상식이라니. 도대체 이명박 주위의 사람들도 그런 적나라한 발언들 수습할 때마다 진땀 꽤나 흘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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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건물터는 여전히 공터이고,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교회도 2차 대전 폭격으로 불타버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놓고 있다. 남대문 복원 비용이 200억 정도 들어갈 것이며 얼마나 걸릴 것이다 등의 복구 관련 기사가 한참 나오더라. 사건책임여부 물어가며 허겁지겁 복원하는 것보다는 그냥 불타버린 그대로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사회적 원인과 부실한 행정처리 등에 대한 경종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엔, 테러나 전쟁에 비해 그 의미가 너무 미미한 것일까나?

사실 나로선, 한반도 서울 땅에 천 년 만 년 남대문이 있을 것도 아닌데, 모든 국민이 한 뜻이 되어 남대문에 집착하는 것도 우스워 보이는 걸. 물론 전혀 생각치도 못한 때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매일 출퇴근길에 보던 남대문을 보던 서울 시민들이야 나와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가 굳이 마음 아파해야 할 이윤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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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참모총장이셨던 김대욱 교수님한테 무기체계관리 수업 들을 때 워게임에 관한 일화를 들은 게 있었다. 워게임. 말 그대로 전투병력과 군사 배치상황, 예비병력, 탄약수, 미국지상군의 도착일수 등등의 세부적인 군대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컴퓨터로 가상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워게임과 관련된 일화의 골자는 이 것이다.
교수님이 아직 김대령이던 시기,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한국군은 미군과 상호 협력체제를 갖추고 있는 만큼 같은 무기체계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 공군 무기체계는 거의 미국에서 운용하는 그대로 들어와 있는 실정이고, 그에 따른 부속품을 모두 미국에서 수입하게 되기 마련. 당시엔 미군이 제시하는(미군의 워게임 결과에 따른) 수량만큼 부속품을 구입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위에서 호출이 들어왔단다. 미군 이놈들이 도저히 군예산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무기를 구입하라고 압력해대니, 해결해 보라- 라는 것. 나름 카이스트 산업공학과 박사 출신이신 우리 교수님? 프로그램 개발자 두 명과 한 달의 시간을 주십시오! 라고 말하곤 당시 유일하게 슈퍼 컴퓨터가 있던 대전에서 한 달동안 포트란 언어가 가득 써진 종이들 벽에 붙여가며 국산 워게임을 만드셨단다. 그리고 미군 담당자와의 대면 자리에 '우리 워게임 결과론 이 정도 물량이면 충분하오' 라며 너희가 사라고 한 거 다 안 살꺼야 라고 배짱 튕기기. '아니, 그 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프로그램 공개해!' 라는 공격에 '당신들도 워게임은 보안 문제라며, 우리도 보안상 공개 못 해' 라고 전쟁소품비 축소 쇼부치기에 성공하신다. 한참 뒤 그 담당자와의 사적인 자리에서 'Franckly speaking, 그렇게 너희가 넘어가 줄 줄 몰랐다' 라고 허심탄회 속내를 털어놓으시기까지 했다는 뒷이야기.

여튼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저 때 저 프로그래머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그 때 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같은 고민을 오늘 수업시간에 또 하게 될 줄이야.

한국이 온라인 특허출원 전자시스템을 개시한 것은 99년이다. 99년이면 카이스트에 선구적으로 인터넷 라인이 깔렸던- 그야말로 온라인이라는 개념이 따끈따끈하던 시기. 특허청장으로부터 '특허출원 온라인 서비스 시작해!'라는 말에 급구성된 특허전문인 2명과 프로그램 개발자 2명(여기서 또 등장하는 프로그래머ㅠ)은 당시 유일하게 특허출원 전자시스템이 운영하고 있던 나라인 일본으로 무작정 출장 가봤단다. 그렇지만 기술 꼭꼭 잘 숨기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그들이 보고 온 것은 전자시스템 이용 화면이 딸랑. 그래서 그들은? 아아 또다시 맨땅에 헤딩 시작한 거지. 한국인의 '까라면 깐다' 정신에 진정 박수를. 짝짝. 그렇게 4명의 거듭된 합숙으로 결국 특허출원의 온라인 시대가 열렸으며, 보완에 보완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동남아에서 연일 연수와서 배워가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데. 난 이 시점에서 또 이런 생각이 드는거지. 저 때 DB 짜고 UML그려가며 프로그램 만들었을 그 개발자들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 허허.

참, 특허청장이 온라인 서비스 시작하라고 했던 취지? 뭐 별거 있나. 특허청장 해먹었으니 산자부 장관 한번 되보겠다는데, 그 놈의 '실적'이 필요했던거지. 꺼이꺼이. 어차피 까라서 깐건데 세계에서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 시행이었다면 그 때 그 개발자들은 개발비라도 쵸큼 더 받을 수 있었을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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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다이어리를 뒤적이다가 무려 03년도 일기에서부터 변리사 어쩌고 중얼중얼 거리는 표현들이 나와서 이것봐라야 하고 움찔했던 적이 있었다. 재택이 삼촌 말대로 변리사 준비를 시작하긴 했지만(삼촌 말대로라면 지금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안 되지만) 여하튼 역시 삼촌 말대로 이 길은 단지 진정한 목표(여기서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 될지는 현재 알 수 없음)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시작했고 역시 될 것이고 보면, 변리사를 주축으로 인생설계 한 번 들어가 주셔야 함이 맞다고 볼 수 있겠지. 언제나 Plan B or C 같은 걸 키워본 적 없는 '되는대로 인생살이'였긴 하지만, 이제라도 Plan A 수습 쯤 제대로 해야 제 갈 길 가지 않겠어? 끄응.

여튼 주절주절 이런 말을 끄적거린 건 오늘도 역시 주워들은 게 있어서 그런건데. 흐음.

당장 언능 합격해서 국내에서 실무 1-2년 쌓은 다음 유학길 접어들어서, 물론 이건 미국 로스쿨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고 그리고 미국실무를 1-2년 쌓아야 한다는 알흠다운 코스가 있겠는데. 두 귀 꽉 막고 라랄라 하고 내 멋대로 살아왔던 거 다 어디가고 괜히 LEET는 무엇인고 하며 알짱거려볼까 했었는데, 학원 강사의 한국 로스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또 다시 팔랑팔라랑 귀가 흔들린다. 한국 로스쿨, 그리고 한국 법조계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나. 우리 혜영이 언능 사시 붙어라 기원해줘야지(덜덜). 가까이는 카이스트 학부개혁부터 살짝 또 가까이의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이나 이건 줴다 밑에 있는 어린 양들(특히 가난한 양들)만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온통 휘둘리고만 있는 꼴이다. 참으로 안습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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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역삼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고, 디자인 보호는 강남에서 다닐 것 같은 상황에서, 테헤란 로를 구석구석 알아보는 것을 하나의 미션으로 삼아보면 아주 즐거웁겠어. 국기원 이며 서울 이야기를 하면 모르겠는 걸, 흑흑. 어쩌겠어 난 영광 촌년인데. 아주 즐거울께야 암, 흠흠. 압구정은 살포시 모르지만, 그래도 종로 및 신촌(뭐 신촌도 젬병이긴 하군) 등등 하나씩 알아가야지 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니까 쩝. 에헤라 죠쿠나 여행이로구나. 그나저나 매일 테헤란로 나들이라니, 추리하게 입고 다녀도 암우런 거리낌 없는 고시촌의 잇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구만. 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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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용어는 일상언어가 아니다 보니, 그 독특한 느낌이 제법 마음에 들 때가 있다. 가령 오늘 특허법 강의 시간에 딱 꽂혔던 단어들.

심결취소소송제소기간.
거절결정불복심판청구기간.

포인트는 단어들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다는 것과 각 음절들이 주로 반복되는 자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 읽어만 봐도 왠지 흐뭇하다. 저 단어가 제목인 노래가 있다면 백 번쯤 가뿐히 들어줄텐데. 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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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를 다룬다는 직업 특성상 특허법은 특허청이라는 행정기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뭔가 그 바닥 생리 특히 특허청에서 일 돌아가는 가십거리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특허법 이해가 사뿐히 되기 마련.

여튼 그것과 상관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가벼운 직무라고 할 수 있는 심판 심리 기일 변경하는 것은 심판장이나 심사관만 담당할 수 있고 특허청장이나 심판원장은 건드릴 수 없게 제정해 놓은 부분을 보면서 떠오른 로꼬 포스팅 한 토막이 있었다. 권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고로 권력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논지의 글이었다. 착한 척 한다고(혹은 정말로 시킬 줄 몰라서) 윗사람이 이리 저리 좋은 소리만 해대고 어영부영 하는 것도 여럿 고생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여러모로 이런저런 사례들이 떠오르며 공감되는 것이었다. 랩의 교수님이라던지, 일 많이(혼자) 하는 부장이라던지... 앞으로 법률사무소를 가던지 일반 회사에 가던지 관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한번 돌아보게 되더라. 학교에 있는 동안 이리저리 본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고 깨달은 것도 있다지만 역시나 지금 당장 나보고 해내라면 한참은 역량부족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자, 앞으로 고고싱. 밀어붙이는거야. 더 커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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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06:08 2008/02/1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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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학원이 좋긴 좋아

le 11/02/2008

오후 2시반 부터 4시간짜리 특허 수업, 강사는 공경식.

한번 3월 9일에 붙어볼까나 라는 생각으로 강의에 임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볼까나 라는 자세를 가져보자는 말로 시작해본 수업이었다 허허.(판례가 말을 이 따위로 문장을 구성한다) 인트로라고 볼 수 있는 가벼운 첫 수업이었으나 민법을 동시에 충분히 진행할 수 있겠고, 실강인 만큼 확실히 집중이 잘 돼서 듣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번쩍번쩍했다. 물론 ‘서브 노트’는 ‘섞은 노트’라고 들리고 ‘법적 접근’은 ‘법적 적분’이라고 듣고 있다는 자그마한 에러사항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동강엔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재밌다.

산업공학이라는 전공으로 변리사 시험에 붙고 나서 어떤 분야의 일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솔직히 안 했었다. 근데.. 이건 전산 베이스로 전자 쪽으로 붙어야 하는건지... 흠 매우 애매할 것이란 생각이 마구 든다. 변리사 일은 전공과 직결된다는 강사의 말! 이미 졸업해버렸고, 전공을 얼마나 남겼나 라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나의 학부 생활을 돌이켜보며... 뜨악해했다. 어쩔꺼야 김혜리, 쿨럭.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이 양립하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기에 2차 선택은 도대체 뭘로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지만(워워). 그래도 2차 붙고 나서 저작권법 공부해서 문화기술 쪽으로 접근하면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다소 복잡하고 아직은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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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경쟁은 특허전쟁(Pro-Patent)이 되었다는 점에서, 변리사야말로 개인적인 능력만으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적 능력까지 배양할 수 있다는 설명에 그만 살짜쿵 가슴이 뛰어버리고 말았다. 소싯적 김진명 소설을 읽을 때 솟아나던 근거없는 애국심과 맥락을 같이 하는 듯한 그런 정체불명의 두근거림. 허허. 아무렴 어떠냐. 우선 시험의 관문부터 통과하자. 삼성이 보내주는 유학도 지금은 그저 매력덩어리로만 보이지만, 붙고 나면 모두 선택의 문제. 운까지 팍팍팍 따라주어 그렇게 유럽으로 고고싱 할 수도 있을꺼야. EU는 기회의 땅이리라. 흐흐. 근데 문화기술 운운하면서 유럽이라니, 아직 정신을 덜 차리긴 했어.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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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변리사의 밥그릇 다툼 이야기.
이공계에서는 밥그릇 다툼 이야기 자체가 수면 위에 잘 떠오르지조차 않는 반면, 이렇게 쉽게 밥그릇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은 든다. 말로 먹고 사는 이 세계에 내가 발을 디디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세상 일 정말 알 수 없다. 졸업하고 이렇게 신림에서 학원다닐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솔직히 없었으니까. 재판을 위해 자료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상대방을 공격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방어는 어떻게 하는지, 판사 상대는 어떻게 하는지, 그러한 수많은 노하우들을 과연 입짧은 이공계 출신 변리사들이 해 먹을 수 있긴 한 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길만한 사건 쫄딱 지기 십상이지, 허허.
난 잘 할 수 있을까나. 여튼 지적 재산권 다루는 변호사랑 친해지라는 그 말 아주 마음에 딱 와닿았어, 그 세상, 발 담가보면 나도 조금 더 커 질 수 있겠지.

물론 그 전에, 빨랑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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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05:22 2008/02/15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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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정이현의 풍선,

난 일반적으로 무심하다 라는 표현에 걸맞는 사람이다. 가령 독서량은 많은 편이지만, 읽었던 책의 제목도 저자도 때론 내용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무심한 걸 수도 있고 굳이 집중하지 않는 걸 수도. 그러니 주목하는 문인이 있을 리 만무한 내가, 유독 이번에는 ‘정이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서점에서 두리번거렸다. 낯선 법 공부한다고 잔뜩 긴장해 있던 차에 익살 선배 블로그에서 책 리뷰를 본 후 ‘따뜻하고 소소한’ 책을 고파했던 즈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소재로 저자의 일상을 담은 산문집 ‘풍선’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작가의 일기 같은 느낌이다. 장영희 교수의 책이 40대 여성의 완숙하고도 토닥거리는 목소리였다면, 이 책은 30대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조금 후면 내가 이러고 있겠구나 라는 약간 이른 공감대가 형성된다. 막연히 30대면 이러겠지 가 아닌, 이 사람 어쩜 나랑 이렇게 생각이 비슷하니 라는 반갑고도 놀라운 공감대이다. 저자와 나의 싱크로율을 80% 이상이라 가정하고, 화용 오빠가 여자친구 심리 연구에 활용할 만한 정도?

‘솔직한 느낌과 부드러운 눈빛’를 가진 따뜻함과 ‘문인의 날카로운 문체’를 기대했던 거에 비해 몇몇 글을 빼면 뒷심이 부족하다 라는 아쉬움이 있다. 나와 비슷한 심리의 작가임을 짐작하건데, 글이란 왠지 담담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급마무리의 어색함. 내 글을 보면서 아쉽다라고 느꼈던 것이라 더 적나라하게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정말로 작가 정이현이 ‘도회적인 새침함 속에 예민한 목소리를 숨기고, 경쾌하고 쉬운 언어로 삶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던’ 사람인지 저자의 소설집을 읽어봐야겠다. 홍상수의 영화도 곁들여 봐야지.

흠. 나도 담담하게 20대의 목소리를 남겨놓고 싶다.
다음은 책을 읽을 때의 단상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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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곧 지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비단 조제와 츠네오뿐만이 아닌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일테다. '사랑이 올 때의 그 압도적인 설렘이 눈멀고 귀 막히게 하겠지만,' 시간의 유한성 앞에 사랑은 가고 처연한 시간이 남는다.

‘생애 처음으로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감을 경험한 사람은, 미처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한다.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이기적으로 투정부린다.’  버스 안에서 이 구절을 읽고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혹여나 내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감에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괜찮은 걸까. 이러다 더디게 부식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약간의 두려움.
조제와 츠네오는 각각 사랑했던 시간을 통과해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아팠지만 그만큼 그들은 자랐으리라. ‘두고 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청춘의 한 시절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성장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라는 말에 어딘가 마음이 아프다.  내 사랑이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끝나버렸을 때 나도 저런 말을 하며 공허함을 달래겠지 라는 서글픔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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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엔 책이건 만화건 화끈하고 극적인 결말을 희구했다. 밋밋한 결말로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현실의 시간이 대리만족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간의 위력일까. 내일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밋밋함이 구질구질함과 같지 않다는 걸 알겠는 지금은, 무난무난하면서도 왕왕대는 소소한 결말이 내 여백을 잔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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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05:11 2008/02/1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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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내 기호?

2월 9일 토요일 2008년이다

좌하악 부근 어금니에 통증이 느껴진다. 무리했다 싶은 거라곤 적당히 쫄깃했던 골뱅이 초밥밖에 없는데. 살짝 깨진 어금니 때운 부분에 충치라도 생긴 걸까. 아무리 화요일부터 사흘 동안 잘 먹었다 해도 그렇지.

화요일 인천 마실. 수요일 강남 마실. 목요일 신림 뒹구르. 금요일 선릉 마실. 뭐 많이 먹었다면 많이 먹었지만 그렇다고 와구와구 씹어댄 것도 아니잖아? 끙, 이 아프면 고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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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CoinLocker Babies는 재미없었다. 특별한 출생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소재들의 조합이 신선하지 않았다. 나열된 이야기들의 연결도 유기적이지도 않았다. 사람을 밀어붙이는 흡입력은 평범한 정도였고, 넌 이미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해 라고 강요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수확이라면 정말 간만에 스토리를 소비했다는 편안한 익숙함. 그리고 무라카미 류가 어떤 분위기라는 걸 알았다는 첫인상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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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오랜만에 본 천재 유교수의 생활, 꼭 사겠어 라는 욕구를 간만에 느꼈다. 확실히 갈수록 나의 기호가 어떤지 스스로 잘 알겠다. 평범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다. 소소한 일상의 자잘함이 자아내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가장 즐겁다. 나날 여행기나 찾아읽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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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Wine이라는 와인 바는 오랫동안 기억하겠지. 포도로 만든 자주색 술 주제에 사람 어깨를 거들먹거리게도 위축하게도 만드는 요상한 술, 와인을 와인바에서는 처음 마신 거였다.

재미있었다. Saltram이었지, 화용 오빠가 ‘살..살..음 기억이 안나’ 라고 단 하나의 클루만 제공했던 와인을 오너인 소뮬리에가 찾아냈다. 와인바에서 먹었다는 것만으로 와인 이름과 생산국가(호주), 그리고 포도품명(Shiraz)를 기억하게 된다. 빈티지는 2005였나. 그건 기억이 가물하네. 타닌 맛이 강한 편이어서 혀 끝을 제법 얼얼하게도 하면서 맛도 향도 꽤 달달해서인지 넘기는 느낌은 부담스럽지 않은 녀석이었다. 이걸 질감 있다고 표현하는 건가? 흠. 단단한 게 뭔지, 복잡한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한 병씩 기억하다보면 꽤나 와인이란 녀석, 즐기게 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왠지 신의 물방울이 읽고 싶어서 오늘 만화방에서 신간(14권)을 뒤적거렸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나의 와인 지식에 호주 쉬라즈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만 추가된 셈인데 그것만으로도 금새 가지치기가 되더라. 이 와인 저 와인 마셔보고 프랑스에도 또 가보고 싶다는 욕구 욕구 욕구. 분명히 어제와 전혀 다른 맛으로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와인이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가진 사람들이 어깨 힘주고 거들먹거리는 자기과시가 사회화된 모양에 편승하는 꼴만 빼면, 일괄 생산되는 일반 주(酒)에 비해 와인은 취향 따라 음식 따라 기분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녀석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내 기호대로 즐길 수 있는 거니까. 내 기호? 인상적인 맛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양념 맛보다는 신선한 재료의 맛 그대로 즐기는 게 좋고, 자극적이고 진한 맛보다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좋아하는, 적당히 솔직한 입맛?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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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04:30 2008/02/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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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월요일_2

잠을 설치는 것도 아닌데, 몇날째 메세지가 있는 꿈에 헉헉대다 일어난다.
오늘 꿈의 교훈도 명확하다. 준비 좀 해라!

오늘 새벽엔, 우주에서 일하다 왔다. 미션은 어떤 행성의 크기를 재라. 우여곡절 끝에 시영이랑 1인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와 그 행성의 중간에 있는 별에 도착했다. 갖가지 사건들 끝에 (교실 안에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어린 아이들 앞에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케플러 법칙 틱한 두 가지 식을 유도하고 적용하는 등 미션방법과 효과 등을 설득시켜야 했다. 급 프레젠테이션.
평소 발표하듯이 자신만만하게 하긴 했는데 공식 유도와 적용 쪽에서 어찌나 버벅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득바득 발표를 계속 하고 있다는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억지스러움,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불편한 기분이 생생하다.

꿈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까지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에 관련내용 숙지는 필요조건이야, 이 밥팅아 팅팅팅' 자책하고 있었다.

어제 꿈의 교훈도 오늘 꿈의 교훈도 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틱한 것 같다.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긴 한가 보다. 그건 그래도 정말이지 왜 잠 잘 때마다 시달릴까. 이미 한 낮인데도 꿈 때문에 피곤하다.

이런 식으로 꿈에 관한 내용만 성실히 써도 심리학과 석사 과정의 학생에게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겠어.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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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02:02 2008/02/0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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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일요일_1.2.

공허했다. 핸드폰 저장목록을 뒤진다. 목록을 내리고 또 내리고 또또 내리고. 큰 의미 없는 인간관계들이 스륵 스륵 지나가는 소리에 더 허해진다. 은지는 아직 미국에 있나 보고 양지 언니는 전화를 안 받는다. 명신이나 평이 오빠에겐 왠지 전화비가 아깝다. 문지나 렌나, 김민 언니와 통화하면 왠지 더 찹찹해질 것 같다. 지연이. 승은이. 유라. 끊을까보다 라고 생각할 때쯤에서야 전화를 받는다. 아, 10분, 9분, 15분.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를 내뱉는다. 말을 듣고 말을 내뱉는다. 근데 마음은 따로 논다. 목이 아파온다. 공허함은 더해진다. 왜 이런거야. 생생한 꿈에서 뛰어다녔더니 싱숭생숭한거니. 단조로운 일상의 지루함인거니. 공부가 안 된다는 답답함이니(공부는 잘 되면서). 동영상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8개의 파일이 민망할 정도로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이런 기분 좋지 않아. 뒹굴뒹굴. 일어나기 싫어. 뒹굴뒹굴. 핸드폰 앨범을 연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내 사진이 하나, 둘, 셋,.. 집에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내 방 책장에 가득 꽂아진 책들. 까만 표지의 두꺼운 장자가 보인다. 어랏, 저 책은 여기에 가져온 건데. 두리번두리번. 장자를 연다. 장자.

‘언제인가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

- 제물론 中 -

 

장자에게 신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장자에게도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사모와 동경은 있다. 그러나 그 초월적 존재는 그 앞에 무릎꿇고 빎으로써 은총을 구하는 인격적인 신은 아니다. 장자가 말하는 초월적 존재란 인간을 만물과 동등하게 세상에 내던지고 생성 변화시키며 사멸시키는 우주의 자유로운 작용이며 곧 자연의 도이다. 그것은 인간이라고 하여 따로 편애하는 일이 없고 금수나 초목이라고 유별나게 미워하는 일도 없다. 인간의 삶에 관계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이 초월적 존재의 작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다. 자기 대신 죽어 줄 자도 대신 살아 줄 자도 없다. 나의 죄를 대신 갚아 주고 나의 고뇌를 대신 져 줄 자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가 산 현실은 흉포한 권력이 횡행하고 미망과 죽음과 비참이 소용돌이치는 가장 비합리한 시대였다. 장자만큼 인간의 추함, 어리석음, 비굴함, 오만함을 꿰뚫은 사상가, 장자만큼 인간 사회의 어두움과 험난함, 이지러지기 쉽고 뒤집히기 쉬움을 맛본 철학자는 없다. 그는 면밀하면서도 냉철하게 인간을 응시하고, 정확하면서도 절실하게 인간 사회를 관찰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거의 모두가 형벌 받은 불구자이고 태어나면서부터의 신체 장애자이며 추한 자, 가난한 자, 학대 받는 자이다. 그는 세상의 현자들이 설정하는 갖가지 가치 체계와 편견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들의 독단성을 향해 반문한다. 인간이 진흙 속의 미꾸라지보다 가치 있다는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미는 어째서 가치 있고 추는 어째서 몰가치한가.

인간은 옳고 그름을, 아름다움과 추함을, 크고 작음을 나누고 꿈과 현실로 나누며 인간을 금수와 구분한다. 인간은 또 원인과 결과를 나누고 현재를 과거에, 미래를 현재에, 현상을 본체에, 인간을 신에게 인과관계 지운다. 장자는 이 상식적인 사고와 세속적인 가치를 일소에 부친다. 실재의 세계에서 꿈은 현실이며 인간은 금수이다. 실재에서는 만상이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변화하며 어느 것도 인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

살아 있는 혼돈과 하나가 되고 살아 있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곧 장자의 해탈이다. 변화하는 만상의 자연 속에 자기를 허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자기의 전부라고 긍정한다. 현재가 생이면 그 생을 꿋꿋하게 살아가고, 죽음이면 그 죽음을 달게 받으며, 꿈이면 그 꿈을 오로지 즐기고, 새이면 그 날개를 하늘 높이 퍼덕인다.

 

장자를 읽고 있으면 내가 불교의 업보나 그리스도의 원죄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라 다만 그 자체로서 태어나고 죽어 갈 따름임을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다만 현재 내가 살고 있다는 틀림없는 사실뿐이다. 유한한 인생에 대하여 허덕일 필요도 없다. 인간의 말을 가지고는 무한이다 유한이다 를 규정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장자의 도 앞에 나의 공허함과 답답함은 이미 조그마해진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마음껏 살아가면 된다는 자유로움에 마음까지도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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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쓰고는 있지만... 변시 준비기간 동안 앞으로의 글들이 참으로 기대된다. 고승덕이 고시 준비 기간에 처음엔 불경을, 그러다가 성경을 읽었다더니만 이해가 되버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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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01:47 2008/02/04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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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토요일_1

2008년 2월 2일 토요일

모닝콜이 들린다. 끈다. 다시 잠이 든다. 두 번째 모닝콜이 들린다. 끈다. 근데 라디오 알람은 왜 안 울리는 걸까 궁금했다. 그냥 버튼 눌러서 라디오를 킨다. 뉴스다. 16살짜리 가출소녀가 8개월 된 아이를 남자친구에게 시켜서 버렸단다. 젠장. 덕분에 정신은 어렴풋이 든다. 오늘 할 일을 조아려 본다. 샤워부터 해야겠다.

화장품을 바르며 허리 운동을 한다. 몸 뻐근한 건 운동을 하나 안 하나 매한가지. 하는 게 낫다. 아침밥을 욕심껏 꾹꾹 담았더니 다 먹어갈 때쯤은 완전 헥헥. 앞으론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11시가 넘어도 심하게 배가 든든하다. 점심 밖에서 먹고 도서관 가려 했는데. 배가 안 고파서 밖에 안 나갔고 밖에 안 나갔더니 도서관에 안 갔고 그러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아.

민법 복습 12시까지 명쾌하게 다 해서 기분 좋았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뒹구르르 운동 30분. 일본어 노래 따라 쓰기하니까 괜히 기분 좋았다. 영어 문장 좀 외워서도 기분 좋았다. 술술 외워지는 게 내가 영특해서인 것 같아 룰루랄라. 근데 쓰면서 시험봤더니 손목이 심하게 시리다. 시간 보니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손목을 혹사시킨 셈. 그래서 또 노래 틀어놓고 운동 한다고 거울 앞에서 30분. 화용오빠가 공부하다 지겨우면 틀어놓고 춤 추라고 보내줬던 Shake a tail feather, 앉아 있을 때는 흘려들었는데 일어나 있으니 김왕장 신난다. 오예. 나 땀났어. 아싸. 이왕에 땀 난 김에 얼마 전 장만한 줄넘기 처음 들고 근처 초등학교로 고고싱. 어차피 민법은 날려버린 오늘 오후, 유산소 운동으로 마무리지어보자고. 으하하.

주섬주섬 지정 운동복 챙겨입고 나온 운동장. 가히 고등학교 때 이후 줄넘기는 처음 손에 쥔 건데, 줄 돌리는 기분이 은근히 쌍콤하다. 그러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운동장의 야구소년들이 쫓겨가버리는 순간, 눈 앞에 집중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팔뚝과 팔목, 윗배와 아랫배, 허벅지와 종아리, 발목과 발바닥의 근육의 사용이 느껴진다. 심장이 뛴다. 폐가 헐떡댄다. 옆구리가 결린다. 쿵쾅쿵쾅쿵쾅 헥헥헥. 이야. 평소에 어지간히도 유산소 운동 안 했다는 거 온 몸에서 유난떤다. 그렇지만 아놔 쫌. 이 순간 들리는 음악은 이적과 이상은, 고 다음은 밥 말리와 The highligts. 루즈한 음악들을 들으며 쉼 없이 뛰는 기분이란 이렇게 신나지 아니할 수가! 분노의 줄넘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달라! 달라! 달라!

그래도 ‘토할 때까지 먹고 한번 더!’ 보다는 ‘토할 때까지 뛰고 한번 더!’ 가 더 뿌듯하다는 게 인지상정. 이 음악 끝날 때까지 계속 뛰어볼까나 라고 생각해버린 탓에, 이상은 목소리 참 듣기 싫구나. 아 왜 이렇게 간주가 길어. 가사 다 불러놓고 랄라라는 왜 또 부르니. 라고 쉼없이 투덜대면서도 ‘그래도 뛰어야지 엉엉’ 하면서 끝까지 뛰어버리는 게 유산소 운동의 묘미로세.

어랏. 운동 하고 와서 씻고 잠깐 글 쓰고 있던 건데 벌써 저녁 먹을 시간구만. 밤엔 딴 거 말고 강의에만 버닝해야지. 휏휏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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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01:45 2008/02/0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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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수요일_3

2008년 1월 30일 한 주일의 피크, 수요일.

에잇, 밍숭맹숭한 밀가루 탄 국물에 잘 익지도 않은 김치가 곁들어진 설렁탕이었다. 설렁탕용 무김치는 사골 국물에 재운 무로 만들어야 제대로인데, 꿀꺽. 감칠맛 나는 김치 먹은 기억이 옛날 꽃날이다. YTN에서는 TEE 도입과 로스쿨 예비인가에 관한 기사가 나오더라. 얼마만에 보는 TV 뉴스인데 그 내용이라봤자 어서 돈 벌어라라라라 이다. 그나마 이무기라도 나올만한 개천은 명박이가 대운하 만든다고 몽땅 없애버리고 있다.

아빠랑 통화했다. ‘엄마가 아빠 가게 잘 해놨다고 그러더라. 깔끔하고 괜찮다던데.’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아 엄마가 그러든?’ 아빠가 되려 반색을 해서 조금 놀랐다. 부족한 부분 보완해서 더 잘 하라고 코치코치 지적했을 엄마 심정이야 알만 하지만, ‘수고했다 잘했다 자랑스럽다 당신이 믿음직스럽다 잘 해봐라’ 등등의 아빠에게 힘이 될 만한 그 어떤 말이라도 했을까 심히 의심스러웠다. 김재인 씨와 함선주 씨가 적당히 딸 뒷바라지 하며 이 험한 세상 살아내야만 하는 단순한 생활동지가 아닌 이상, 따뜻한 말 한 마디 없는 부부생활이라면 그 각박함이 광주역에 그지없잖아. 흑.

엄만 칭찬이 너무 박하다는 아빠의 투정에, 실상 엄마나 아빠나 이 딸에게 기억에 남는 칭찬 한 마디 내려주신 적 없다는 의미를 함축시킨 ‘엄마나 아빠나 똑같은데’ 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떨어져서 엄마한테 못 해봐’ 라고 ‘의지할 곳은 우리 딸이야’ 라고 말하는 낯선 아빠의 모습에 어서 자리 잡고 더 자주 보고 서로가 더욱 일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유년시절에 혜리를 춤추게 했던 칭찬이 없었으면 어떠랴, 우리 아빠 칭찬 많이 해드려야지 라고 혼자 좋아라 할 만큼 잘 컸는데. ‘우리 혜리가 삐약삐약대며 식탁에 올라보겠다고 낑낑대던 게 엊그제 같다’ 라고 여전히 새삼스러워 하는 아빠 앞에서, 난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부모라는 게 마냥 무서운 존재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함께 살고 있으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무덤덤해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 당신을 증오하리라 죽이리라 는 김윤아의 목소리를 무한반복으로 듣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생각만으로 답답해지는 부담감에 바둥대던 울적한 어린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밥 먹었냐 건강은 어떻냐’ 그리곤 할 말이 없다는 침묵과 어색함으로 마무리되는 통화를 하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들. 그러던게 특별한 계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일상이 쌓여가면서 점점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되더라. 내가 그 두 분을 생각하는 기꺼운 마음을 알겠는 만큼, 어느새 내게도 자식이란 게 있으면 좋긴 좋겠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결코 내 부모가 나에게 쏟았던 희생과 열정- 그 방향과 효과가 무엇이든- 을 반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손사래질, 워워.

그랬던 것이 이제 조금 또 달라진다. 외국에 있을 때마다 참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남녀노소와 삼강오륜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에선 잠시 잊었던 것이었는데, 뭐랄까, 오늘 아빠랑 통화하면서 우리가 왠지 좋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문득 김재인 씨와 함선주 씨가 아빠와 엄마뿐만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랑 아빠로선 참으로 오만방자한 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킄,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라니 진짜 좋잖아! 히히. 순식간에 내 자식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까지도 또 다른 좋은 친구에 대한 기대감으로 둥실둥실해지는 순간이다. 사는 게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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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07:25 2008/01/3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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